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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머릿속에서 끝없이 상영되는 영화"... 단순 습관 아닌 '이 장애' 신호일 수도

회의 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잠들기 직전에도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끊임없이 상영되는 사람이 있다. 등장인물과 줄거리까지 갖춘 생생한 상상에 빠져 몇 시간을 흘려보내고, 정작 눈앞의 일과 대화에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기도 한다. 단순히 '공상이 많은 성격'으로 넘기기 쉽지만, 일상에 큰 불편을 겪을 정도라면 '부적응성 백일몽(Maladaptive Daydreaming)'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증상을 겪는 사람 상당수가 '성인 ADHD' 진단 기준에 부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화할 수는 없다. 끝없는 상상이 '주의력 결핍'으로 오인되거나, 반대로 ADHD 뒤에 백일몽이 가려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적응성 백일몽의 정체와 성인 ADHD와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구별법까지 정신건강의학과 김희진 교수(중앙대학교 광명병원) 도움말로 자세히 알아본다.

부적응성 백일몽, 생생한 몰입에 죄책감까지... 반복 행동도 동반
부적응성 백일몽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매우 생생하고 몰입적인 공상에 장시간 빠져드는 것이다. 상상 속 세계는 한 편의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지속적인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갖는 경우가 많고, 환자들은 현실보다 백일몽에 몰입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끼며 상상 속 인물에게 정서적 애착을 갖기도 한다. 김희진 교수는 "백일몽 속에서는 일시적인 만족감과 위안을 얻지만, 이후에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공상에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공상 습관을 타인에게 숨기거나 현실보다 내면 세계를 택하면서 외로움을 겪고, 실제 사회적 관계가 위축되기도 한다. 행동적으로는 제자리에서 맴돌거나 뛰기, 손 흔들기 같은 정신운동적 상동행동이 나타나거나, 상상 속 인물의 대사를 입 모양으로 따라 하고 환상 속 장면을 실제처럼 연기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상태를 두고 "부적응성 백일몽은 정상적인 백일몽 스펙트럼의 병리적인 끝에 위치한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확한 원인은 아직... 특정 자극이 유발하기도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부적응성 백일몽을 정서 조절을 위한 일종의 대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상황이나 자극이 백일몽을 유발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이 특정 음악을 들을 때 상상에 더 쉽게 몰입한다고 보고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혼자 걷기, 장시간 이동, 침대에 누워 있기처럼 반복적이고 자동화된 활동이 촉발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외로움이나 스트레스, 현실의 좌절감 역시 상상 세계로 도피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어린 시절의 정서적 방임이나 트라우마 경험과의 관련성도 보고된다. 다만 김 교수는 "모든 환자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생물학적·심리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풍부한 상상력과는 달라... '통제력 상실'이 핵심
부적응성 백일몽은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공상을 즐기는 성향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상태다.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고통과 함께 학업, 직업, 사회생활에서의 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과도하고 생생한 공상이 특징이다. 김희진 교수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백일몽이나 공상을 경험할 수 있지만, 부적응성 백일몽은 단순히 상상력이 풍부한 수준을 넘어 상상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현실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대안적 현실에 강렬하게 몰입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상상 속 세계가 복잡한 줄거리와 등장인물, 관계 구조를 갖춘 하나의 내적 세계인 경우가 많다. 결국 일반적인 백일몽과 부적응성 백일몽을 가르는 핵심은 상상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고통과 기능 손상, 그리고 통제력의 상실이다. 이에 김 교수는 "하루 수 시간 이상 공상에 몰두하거나, 해야 할 일을 반복적으로 미루고, 상상을 줄이려 해도 잘 되지 않으며, 현실보다 상상 속 세계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면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환자 77%가 'ADHD 기준' 부합... 주의력 '흩어지나', '몰입하나' 차이
부적응성 백일몽은 ADHD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 둘은 모두 집중력 저하, 산만함, 과제 수행의 어려움 등의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김희진 교수는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부적응성 백일몽 환자의 약 77%가 ADHD 진단 기준에도 부합했으며, 대부분은 부주의형 ADHD의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부주의가 ADHD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백일몽에 지나치게 몰입한 결과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외부에서 보면 집중력이 부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의가 여러 곳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환상 세계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상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연구자들은 일부 환자의 경우 ADHD로 보이는 증상이 실제로는 부적응성 백일몽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성인 ADHD 환자가 모두 부적응성 백일몽을 겪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부적응성 백일몽 환자의 상당수가 ADHD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 데 반해, ADHD 환자 중 부적응성 백일몽 기준을 충족하는 비율은 약 20% 정도에 그쳤다"며 "두 상태가 별개의 임상 현상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임상에서 둘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주의가 흐트러지는 방식'에 있다. 김 교수는 "ADHD에서는 한 가지 일을 끝내기 전에 다른 일로 관심이 옮겨가거나, 여러 과제에 압도감을 느끼고,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등 실행기능의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부적응성 백일몽은 특정한 상상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현상이 핵심이다. 김 교수는 이를 "해리성 몰입(dissociative absorption)의 병리적 형태"라고 표현하며, "ADHD가 주의의 분산과 실행기능의 문제에 가깝다면, 부적응성 백일몽은 과도한 몰입과 해리적 특성을 중심으로 하는 별개의 정신적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학계에선 '별도 장애' 인정 주장하기도
부적응성 백일몽은 아직 공식 진단 체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학계에서는 이를 해리장애 범주 내의 새로운 독립적인 장애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희진 교수는 "부적응성 백일몽이 다른 정신질환과 구별되는 비교적 일관된 증상군을 보이며, 정신질환 증후군으로 개념화하기 위한 기준을 상당 부분 충족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적응성 백일몽은 현실 경험으로부터의 이탈, 지각과 행동의 변화, 자아감의 부분적 분리 같은 해리적 특성을 포함해 기존 해리장애와 일부 공통점을 갖는다. 다만 현재의 해리장애 진단 범주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 주목받는 이유다. 김 교수는 "아직 학계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는 아니지만, 독립적인 증후군으로 인정하는 것이 향후 진단 체계 정립과 치료법 개발, 관련 연구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단은 '면담'이 핵심... 자가 척도는 선별 도구일 뿐
현재 부적응성 백일몽에 대한 공식 진단 기준은 없어, 진단은 주로 임상 면담을 통해 이루어진다. 환자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공상에 빠지는지, 통제가 가능한지,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정신질환으로 더 잘 설명되는지에 대한 감별진단도 함께 진행한다. 연구 목적으로는 '부적응성 백일몽 척도(MDS-16)' 같은 자가평가 척도가 널리 쓰이지만, 어디까지나 선별검사의 역할에 그친다. 김희진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는 MDS-16 점수가 ADHD 증상과도 관련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어, 척도 점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부적응성 백일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면담을 통해 실제 기능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해당 증상이 단순한 주의 산만인지 아니면 몰입적이고 해리적인 백일몽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진단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상상력을 없애는 게 아니라,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핵심
현재 부적응성 백일몽에 대한 표준화된 치료법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인지행동치료, 마음챙김 기반 치료, 정서 조절 훈련 등이 도움이 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상상을 많이 한다는 사실 자체를 병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상상력은 인간의 창의성과 정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김희진 교수는 "문제는 상상이 현실을 풍요롭게 하는 수준을 넘어 현실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라며 "공상 때문에 학업이나 업무에 어려움을 겪거나, 인간관계가 위축되고, 스스로도 통제가 어렵다고 느낀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부적응성 백일몽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시작되는지 기록해 보고, 음악이나 특정 환경처럼 자신만의 촉발 요인을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만 김 교수는 백일몽을 무조건 없애려는 접근은 경계했다. 김 교수는 "부적응성 백일몽은 많은 경우 정서적 위안이나 도피처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억제하려고만 하면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결국 치료의 목표는 상상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실감을 되찾고 현실 속 삶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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